자비를 팔다

2013. 11. 22. 17:10책이야기

 

자비를 팔다 The Missionary Position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

 

 

크치스토퍼 히친스는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한 데블스 어드버켓(the Devil's Advocate)이다. 악마의 변호사. 교황청에서 누군가를 성인으로 시성하려고 할 때, 그 반대증거를 제시해달라고 부탁받는 사람이다. 이 교황청의 검증 시스템에 마더 테레사가 올랐다. 그때 히친스가 제시한 반대 증거들이 이 책에 들어있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해보자. 테레사는 여러 곳에서 상을 받고 그에 따른 부상으로 상금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공짜는 없다.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주고 받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공짜는 없다. give가 있으면 당연히 take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유형의 것을 주고 무형의 것을 얻는 것이라 할지라도 상호작용은 항상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줄 때도 신중해야 하지만 받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우리 나라 독립지사들이 일제의 앞잡이들이 주던 보상금이나 훈장을 거부했던 것을 기억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테레사는 어땠을까? 히친스가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들에 의하면 그렇지 못했다. 주는 이가 악명 높은 독재자이든, 제국주의의 첨병이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인물이든 상관없이 받았다.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아이티의 지도자도 있었고, 심지어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로 이름 높은 존 로저도 있다. 이들은 쉽게 말해서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모르기가 더 어려운 인물들이었다. 차라리 태평양을 건너면서 바다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혹여 몰랐다고 치자. 그러면 알게 된 다음에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테레사는 후원금을 받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후원자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재판을 받는 도중에, 친절하게도 그 후원자의 구명을 위해서 재판관에게 편지를 보낼 만큼 적극적인 후원자 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 편지를 본 담당 검사가 테레사에게 답장을 보낸다. ‘당신의 후원자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사기꾼에게 속아서 전 재산을 날린 사람들 중에는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당신이 받은 후원금을 돌려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 불쌍한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 그러나 테레사는 자신을 후원한 사기꾼을 위해서는 관심이 지대하지만, 그 후원자에게 피해를 본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오로기 기도와 섬김에만 몰두하시는 분이 이 복잡한 세상사의 이면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런 은둔형 수도자는 아니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한때 105개가 넘는 나라에서 500개 이상의 수도원을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순진함을 기대한다는 것이 더 순진한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콜카타에서의 구호활동은 어땠을까? 구호활동조차 허구라고는 못할 것 아닌가? 그렇다. 구호활동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그녀의 독특한 방법을 통한 구호활동이었을 뿐이다. 무슨 말인가? 그녀는 인도 콜카타의 수많은 병자들을 인도했다. 어디로?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어떻게? 치료가 목적이 아닌 구호활동과 비밀스러운 세례를 통해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테레사의 계좌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자금이 들어 있었다. 히친스의 말에 의하면 최고의 시설을 갖춘 의료원을 몇 개나 세울 수 있는 자금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죽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수준에서 만족할 뿐이었다. 그리고 힌두교인이나 이슬람교인인 환자들에게 수녀들이 조용히 다가가서 천국으로 가는 표를 원하느냐고 묻고, 환자들이 원한다고 대답하면 그 환자의 이마를 젖은 수건으로 식혀주었는데, 그게 그 수녀들에게는 세례의 의미였다는 것이다. 당사자도 이해하지 못할 질문과 대답,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례를 통해서 수녀들은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들을 천국으로 보냈다고 기뻐했던 것이다. 이건 신앙적으로도 모독적인 일일뿐만 아니라, 아마 한국에서 이런 일을 자행했다면 이단으로 정죄되고도 남았을 엄청난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콜카타 구호시설의 모습이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갔던 전문 의료인들이 기겁을 하고 의아해했던 것이다.

 

히친스가 제시하는 증거를 교황청이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교황청 직원이었다면, 나는 설득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보다, 그녀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할 것이다.

 

나도 종교인이다. 종교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멋쩍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난감한 그런 입장에 있지만, 마더 테레사와 동일한 사례들을 수차례 목격했고, 그 우상화의 폐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마더 테레사는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맞다. 그녀가 팔아먹은 거룩과 자비의 분량에 비추어 보면 이 말이 과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거룩과 자비의 탈을 쓰고 인간 이하의 행위나 평균 이하의 저질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종교인들이 많다.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 그들의 행위는 드러나지 않는다. 거룩과 자비의 탈이 워낙 두텁워서 어지간한 비난에는 끄떡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개신교는 이미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단정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교묘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사악한 타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간악한 것은 본래 자신들의 것이 아닌 신성한 직책을 통해서 얻은 권력을 끝없이 사유화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탐욕이다. 그들은 아직도 높은 단상에 올라가서 거룩한 말씀을 더럽게 전파하고 있다. 그들은 그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보수적인 모습과 더욱 거룩한 모습을 추구한다.

 

마더 테레사는 사실 이러한 종교계의 추악함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또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다만 그녀는 세계적으로 활동했다는 것과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히친스는 그 아이콘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콘을 잃은 슬픔 따위는 없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에 눈물짓는 순진무구한 신앙인들은 차라리 그 눈물을 거두고 자신의 순진함이 악용되지 않았는지 그 사실을 돌이키며 울었으면 좋겠다.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길영성  (0) 2013.11.22
급진적 기독교  (0) 2013.11.22
까뮈의 이방인  (0) 2013.11.22
영지주의 복음  (0) 2013.11.22
히틀러의 아이들을 읽다  (0) 20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