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6. 09:05ㆍ성경이야기
사사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다윗은 어디에선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아직 갈길이 멀고, 밤이 깊다. 이 깊은 밤중에 한나라는 여인의 고통이 전면에 등장한다.
밤중에 등장했으나 이 여인은 빛이 아니다. 밤중 같은 세상에서 저 깊은 골방 같은 어둠을 만난 여인이다.
한나는 자식이 없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다. 그것도 여럿이나 있다.
한나는 복을 받지 못했고, 브닌나는 남들이 받는 복을 받았다.
혹시 한나가 새로운 사라는 아닐까?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울실 때 그의 곁에 두셨던 사라같은 여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럴려면 엘가나가 아브라함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차라리 한나가 아브라함이 가는 길로 간다. 아들을 바치는 길. 모리아산으로 가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면면은 한나를 채찍질한다.
엘리와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지키던 성막은 기쁨과 위로의 자리가 아니라,
책망과 오해, 방탕과 방기로 뒤덮인 가고 싶지 않은 장막이었다.
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게, 마치 저승사자가 성막의 문지기로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브닌다는 경쟁자를 잘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한나가 격발되는지 잘 알았다.
엘가나가 제사드리러 갈 때마다 한나에게 갑절의 제물을 주었다.
그 절반을 받은 브닌나는 갑절을 받은 한나에게 물었으리라.
"너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갑절이나 되는 제물을 바치고도 자식을 얻지 못하느냐?
내 것도 너를 주랴?"
엘가나는 착한 남편이었다.
한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갑절의 제물로 한나를 위로했다.
그러면 한나가 슬픔을 이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갑절의 제물이 갑절의 슬픔이란 걸 엘가나는 몰랐다.
급기야 엘가나는 브닌나가 당긴 방아쇠에 피흘리고 쓰러진 한나에게 짜증을 낸다.
왜? 왜? 왜?
한나는 울며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엘가나는 소리친다. 왜 우느냐, 왜 먹지 않느냐,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엘가나는 자기의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한나의 슬픔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모진 손길은 따로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다."
이제부터 이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
엘가나의 짜증 섞인 질문이 아니라, 진지하고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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