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항상 친절하신 건 아니었다

2020. 3. 25. 16:21성경이야기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항상 친절하신 건 아니었다는 게 보인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일부러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먹으라는 둥,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둥.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게 말씀하셨다.

이때만 그러신 게 아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더 하셨다. 때로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고, 때로는 호통을 치시고,

때로는 비아냥 거리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셔야 할 분이, 좀 더 친절하게, 좀 더 자상하게 말씀해주시면 안 됐을까?

한 영혼 구원은 우리 일이고, 자신은 그저 십자가로 뚜벅뚜벅 걸어가시면 된다고 생각하셨을까?

어떤 목사님은 한 영혼에 목숨을 걸라고 하셨는데?


아마 내가 20대나 30대였다면, 이렇게 불친절한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이제 나이가 50이 넘고, 세상 살이도 좀 알게 되고, 사람이라는 종류의 생명체에 대해서도 좀 알게 되니까, 

예수님의 까칠함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친절과 자상함이라는 것, 그게 통할 때가 있고, 쓸모 없을 때가 있다. 

예수님께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분이셨는가?

그럴리가. 그분처럼 손해보는 일을 하신 분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이야말로 쓸데 없어 보이고, 헛수고처럼 보이는 일을 많이 하신 분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쓸데 없는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있고, 쓸데 없어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하실 때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쓸데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주로 잘못된 목적을 갖고 예수님을 찾아온 경우에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한다거나, 예수님을 왕으로 떠받들려고 한다거나, 예수님을 궁지에 몰려는 질문을 던진다거나 할 때 그러셨다.

거짓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마치 대결하듯이, 혹은 이용하려는 듯이 찾아 올 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에 순순히 말려들지 않으셨다. 

내쫓으셨다. 귀신을 내쫓듯이 물리치셨다. 딱딱한 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로, 난해한 말로, 그들의 의도와 전혀 상관 없는 말로, 그들을 물리치셨다.

아마도 우리는 끌어 안고, 보듬고, 쓰다듬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들을, 예수님은 단호하게 내치셨다.


그럼 반대로 예수님이 쓸데 없는 일을 열심히 하신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어리석지만, 부족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며, 찾는 자들일 경우에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 주변에 있는 것들의 면면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이 한심한 인물들도 예수님과 생각이 달랐고, 자기네 속셈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내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짐작컨데, 예수님에게도 뭔가 분명한 "선"이 있었던 것 같다. 

선을 넘은 자들과 선을 넘지 않은 자들. 다 어리석고 부패했지만, 그냥 어리석은 자들과 그냥 부패한 자들은 달랐던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선을 밟고 있을까, 선 너머에 있을까, 선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까, 아니면 선을 등지고 있을까?


예수님이 항상 친절하신 건 아니었다.

그 선 앞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을 것 같은 그 선을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